높으신 분들의 전쟁놀이에 죽어가는 젊은 청춘들
유럽에선 1차세계대전이 한창인 1915년 5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 아치 해밀턴은 삼촌의 코치를 받으며 곧 있을 육상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달리기에 재능이 있는 청년이다. 어느 날 소를 돌보던 중 호주 원주민인 친구 잭을 무시하는 백인 레스와 시비가 붙고 말을 타고 길을 달리는 레스와 맨발로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아치 중에 누가 먼저 문에 도착하는가를 놓고 내기를 한다. 내기에 질뻔하지만 레스가 말에서 떨어져 내기에서 이기지만 발을 다친다. 발을 치료하며 삼촌은 아치가 재능이 있고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치는 호주군에 자원입대해서 터키와 맞서 싸우고 있는 갈리폴리 전쟁에 참전하고 싶어 한다. 한편 타 지역에서 온 프랭크 던은 그의 친구들이 다 같이 입대하자고 하지만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
육상 대회 당일 프랭크도 가진 돈을 모두 자신에게 내기 배팅을 하고 대회에 참가한다. 하지만 삼촌과 연일 맹훈련을 해온 아치에게 지고 만다. 아치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그때 기병대에서 모병을 위해 모병관들이 멋진 말과 제복을 입고 등장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인다. 아치는 입대할 결심을 하고 삼촌에게 말을 하고 아치의 굳은 결심을 본 삼촌은 아치의 훈련에 항상 사용한 스톱워치를 아치에게 준다. 아치는 18세라 나이에 미달이지만 나이를 속이고 입대를 하려 하지만 아처에게 내기에 진 레스가 모병관에게 그 사실을 폭로하고 아치는 입대를 하지 못한다. 낙담한채 식당에 앉아 있는 아치를 본 프랭크는 아처에게 자신과 퍼스에 가서 다시 입대를 하라고 하고 둘은 지나는 기차를 훔쳐 탄다. 그러나 기차를 잘못탄 그들은 사막을 가로질러 가게 되고 가면서 군입대 문제로 티격태격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퍼스에 도착한다. 그사이 둘은 같이 기병대에 지원하기로 하고 아치는 라살스라는 이름으로 출생증명서까지 위조를 하고 얼굴에 가짜 수염도 붙여서 입대를 하지만 말을 탈 줄 몰랐던 프랭크는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헤어지는 둘. 프랭크는 술집에서 다시 만난 고향 친구들과 보병으로 자원입대를 한다.
1915년 7월. 이집트 카이로에 호주군은 훈련 캠프를 차리고 프랭크는 보병으로 그곳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편을 나눠 가상 전투를 벌이던 중 프랭크와 아치는 다시 재회를 한다. 둘은 아치의 지휘관 바튼 소령을 찾아가 프랭크를 자신의 부대로 전출을 오게 부탁을 하고 같이 단거리 육상 훈련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바튼은 허락을 한다. 드디어 그들은 갈리폴리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곳은 그들의 상상과 달랐다. 좁은 진지 갖혀 있고 항상 포격과 총격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선임들은 그런 일상에 익숙해져 포탄이 떨어져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아치와 프랭크도 그곳에 적응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새로운 보병들이 도착하고 그곳에는 프랭크의 친구들이 있다. 그렇게 재회한 친구들. 그러나 수블라 만에 상륙하는 2만 5천의 영국군이 무사히 상륙하도록 호주군이 터키군을 유인하는 작전에 투입된다. 요새에 가까운 터키의 진지를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바튼 소령은 반대하지만 포병의 지원 사격으로 터키군은 사라질 거라 장담한다. 4시 30분부터 포병의 포격이 시작될 예정이지만 포병 장교와 바튼의 시계가 서로 맞지 않는다. 프랭크의 친구들은 아치와 프랭크의 부대보다 하루 일찍 전투에 나선다. 그날 저녁 친구들의 부대는 공격에 실패하고 수많은 부상병들과 함께 돌아오고 프랭크의 친구들은 한 명이 전사하고 또 한 명은 중상을 입는다. 드디어 전쟁의 실체를 실감하는 프랭크. 반쯤 정신이 나간 프랭크를 걱정하는 아치. 바튼 소령은 아치를 찾아온다. 바튼 소령은 아치에게 다음날 전투에서 전령으로 뛰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아치는 전투에 참여하고 싶다고 거절하고 프랭크가 자신만큼 빠르다고 대신 전령으로 뛰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다음날 프랭크는 전령으로 전투에서 빠지라는 명령을 받고 기뻐하며 자신의 짐을 챙겨 바튼 소령에게 간다. 아치는 프랭크에게 행운을 빌어달라고 하고 프랭크는 악수를 하며 또 볼 날이 있겠지라고 그 둘은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드디어 시작된 포병의 사격. 그러나 포병 지휘관의 시계가 틀려 바튼 소령의 공격 시작 시간보다 먼저 끝난 포격으로 터키군은 하나둘 진지에 포진하기 시작하고 로빈슨 대령에게 연락을 해서 터키군이 참호로 돌아와서 위험하다고 하나 그래도 공격하라는 대령의 명령에 1열을 준비시키고 드디어 공격 개시를 알리는 호각이 불고 용감히 병사들은 참호를 나서지만 참호를 나서자마자 불을 뿜는 터키군의 기관총들. 순식간에 1열은 전멸하고 소수의 부상병만 남는다. 다시 2열을 준비시키는 호주군. 하지만 2열 또한 참호를 나서자마자 얼마 가지 못하고 전멸한다. 3열이 공격에 나설 차례. 그때 통신이 두절되고. 바튼 소령은 프랭크에게 공격을 중지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고 전우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에 프랭크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 로빈슨 대령에게 간다. 그러나 대령은 그대로 공격을 진행하라고 하고 다시 돌아간 프랭크에게 바튼 소령은 가드너 장군에게 직접 가라고 한다. 프랭크는 다시 한번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고 가드너 장군은 바튼 소령에게 공격을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프랭크는 3진이 출발하기 전에 바튼에게 가드너 장군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달려 가지만 그 사이 끊어졌던 통신이 다시 연결되고 대령은 바튼에게 빨리 공격하라고 명령하고 프랭크가 도착 하기 직전 공격 휘슬을 울리고 만다. 그의 공격 신호에 아치가 포함된 3진이 공격에 나서고 앞선 1,2열의 공격과 마찬가지로 적군의 집중 사격에 맥없이 전멸하고 만다. 아치 역시 용감히 적진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 전사하고 만다.
장기판 위의 말이 되어버린 젊은이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갈리폴리 전투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터키가 중립을 포기하고 독일과의 동맹을 선언하자 러시아로의 물자 수송과 다른 전략적인 이유로 당시 해군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의 계획으로 시작된 전투이다.
성공한다면 러시아에게 물자를 조달할 수있게되고 터키 쪽으로 진격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턱밑에서 공격할 수도 있게 되어 연합군은 굉장히 유리한 국면을 맞을 수도 있는 작전이었다. 거기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오스만 제국이지만 이때는 이미 약해질 때로 약해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여서 조금 만만히 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작전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육군과 해군이 합동으로 작전을 전개했어야 하지만 육군은 서부 전선에서 빼낼 병력이 부족했다. 결국 1915년 2월 19일 해군만으로 작전이 시작되었으나 강력한 터키의 해안포들과 이미 해안에 쫙 깔린 기뢰로 인해 영국 프랑스 연합 해군은 전함 3척과 다수의 순양함을 잃는 참패를 당했다. 3월 18일 2차로 다시 공격을 시도했으나 이 역시도 16척 중에 5척이 격침되어 후퇴하였다. 두 차례에 대패로 처칠은 해군 장관에서 사퇴하였고, 처칠 인생 최대의 흑역사로 남아 그의 정치 인생에서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된다.
결국 육군이 4월 25일 상륙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터키군은 병력 보충과 함께 전열을 재정비한 후였다. 거기도 상륙 작전을 펼치기엔 너무 좁은 해안과 해안 바로 앞에는 절벽이 있어 상륙군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형, 거기다 터키군은 100m 앞에 철조망과 지뢰, 기관총 진지 등 이미 요새화한 참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공격하는 족족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 나갔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전투도 그러했다. 명령을 내리는 장군들의 눈에 젊은 병사들은 그저 장기판의 말에 불과했다. 그들이 지도 위에 한 부대를 올려놓으면 그들은 앞에 어떤 강력한 적의 저항이 있어도 그곳으로 돌격해야만 했다. 결국 영화에서 처럼 하루 동안의 전투에서 호주군은 8천 명의 전사자가 나왔고 1만 8천 명이 부상을 당했다. 호주군 참호와 터키군 참호 사이 100m는 그야말로 무인지대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터키도 똑같은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다. 서로 몇 차례 무모한 돌격을 시도하는 사이 양측의 젊은 병사들은 수없이 죽어 나갔다. 결국 보급 문제와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겨울이 다가오자 그해 11월 영국은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영국은 철수 작전만큼은 상륙 작전과는 다르게 치밀하게 준비하고 은밀하게 진행시켜 이듬해인 1916년 1월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단 1명의 전사자도 남기지 않고 철수 작전을 마무리한다.
갈리폴리 상륙 작전은 전 전쟁사를 통틀어 가장 실패한 상륙 작전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갈리폴리 철수 작전은 가장 성공적인 철수 작전으로 불리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 영화는 젊은 시절의 멜 깁슨을 보는 재미도 있고 영화 자체로도 잘 만들어진 영화로 혹시나 볼 기회가 있는 분들은 꼭 보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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